우루과이에 대해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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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과이에 대해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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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루과이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사이에 낑겨 있는 나라임. 국토는 전부 평지로 산이 없으며 우루과이에서 가장 높은 지역은 해발 1666m 밖에 안됨. 22개의 강이 흐르며 만들어내는 비옥한 평원을 가진 나라임


2. 우루과이라는 이름은 아르헨티나와의 국경선을 이루는 큰 강 The Uruguay River에서 비롯된 것임. 강 이름을 그대로 나라 이름으로 쓰는 감비아와 같은 사례임.








3. 주요 산업이 목축업과 농업이다 보니 도시 발달이 매우 더딘 나라임. 수도는 항만도시 몬테비데오인데, 인구가 거의 대부분 여기에 몰려살고 있음. 


4. 유럽에서 온 백인 이주민들이 대부분 아르헨티나를 거쳐서 이주했기 때문에 우루과이 사람들은 오리엔탈즈, 즉 동쪽 사람들이라 불렸음. 그래서 우루과이의 정식 이름은 Oriental Republic of Uruguay (우루과이 동방공화국)임.


5. 강대국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사이에 끼어있고 우루과이 이상으로 비옥한 토지란 남미에 없기 때문에 외교에서 팽창주의가 득세한 적은 거의 없음. 이는 우루과이의 매우 특수한 정치 환경임. 쇄국주의는 아니지만 외국의 영향을 덜 받는 편임.


6. 주요 산업이 목축업이기 때문에 국토의 대부분을 지주들이 소유하고 있으며 빈부 격차가 심함. 반면 식료품 가격은 싼 편이라 굶어죽는 사람은 다른 남미 국가들에 비하면 적은 편임. 그래서 마르크스식 경제 모델을 실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나라로 알려지기도 함. 보수적인 나라인데 우루과이의 보수주의란 미국 입장에서 보면 좌파에 가까움. 상대적으로 내부 갈등을 적게 겪은 나라이기 때문임.


7. 유럽 제국주의뽕 잔뜩 맞은 브라질의 식민지였다가 독립한 역사가 있어서 우루과이 건국 당시, 브라질식의 강력한 중앙집권정부의 통치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았음. 우루과이는 유럽 제국주의나 브라질의 강한 정부에 실망한 사람들이 이주하면서 강력한 리더를 꺼리는 전통이 있음. 


8. 강력한 정부의 힘으로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완전히 유럽화된 국가를 세운 아르헨티나나 브라질과 달리 우루과이는 강력한 리더의 부재 때문에 원주민들이 강한 발언권을 갖게 됨. 우루과이 정치는 비안코스(백인들)와 콜로라도스(원주민들)의 공존에서 시작했다.


9. 비안코스가 콜로라도스를 학살하지 않은 이유는 역시나 그들의 돈줄이 목축업이었기 때문임. 내전으로 농장이 파괴되면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입기 때문임. 몬테비데오에서는 백인 군벌들이 정권을 세우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콜로라도스와 공존을 모색했음. 이 점은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와 대단히 큰 차이임


10. 20세기에 들어서면 콜로라도스가 점차로 세력을 키워나가게 됨. 백인들과 원주민들이 섞여살면서 혼혈들이 많이 태어났고, 또 우루과이라는 폐쇄된 환경에서 살아가다 보니 백인의 지배를 확립할 필요도 그다지 느끼지 못함. 무엇보다도 브라질이 계속 혼란을 겪는 것을 지켜보았기 때문에 유럽화를 내세우던 비안코스가 인기를 잃게 되었음. 토지를 소유한 지주들을 어떻게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우루과이는 그 대신 남미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가장 진보한 복지제도를 갖추게 됨.


11. 동시에 우루과이는 민주주의의 약점에도 시달렸음. 대통령의 권한을 계속 축소시키다 보니 대통령은 외교권도 독점하지 않았고 그 결과 외교가 사실상 마비가 된 것임. 우루과이가 중립을 선언한 것은 중립 이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임. 게다가 경제가 나빠져도 정부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음. 


12.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다른 나라들이 목축업과 농산물 수출 경쟁에 뛰어들면서 1차세계대전과 2차세계대전의 전쟁 특수를 누리던 우루과이 경제가 꿀빨던 시절은 끝났음. 경제가 급격히 약화되는데 정부의 힘이 없다 보니 혼란은 계속 가중되었음. 


13. 혼란이 심해지자 공산주의자들이 우루과이를 공산화할 기회로 보고 우루과이에서 무장게릴라 조직을 만들었음. 투파마로스라는 조직임. 투파마로스는 공산화를 이룩하고 지주들로부터 토지를 빼앗아 평등히 나누겠다고 주장하며 우루과이에서 무장 투쟁을 시작했음. 다만 우루과이가 워낙 산이 없는 나라이다 보니 투파마로스는 몬테비데오나 다른 항구도시들에서 활동하는 '도심지 게릴라'로 악명을 떨치게 됨.


14. 투파마로스의 활동에 빡친 것은 다름아닌 헨리 키신저였음. 키신저는 남미의 군사정권들과 함께 좌익 게릴라들을 뿌리뽑겠다는 콘도르 작전을 수립했는데 도심지 게릴라의 토벌 계획을 시험할 나라로 우루과이를 찍었음. 우루과이가 비교적 폐쇄된 사회이다 보니 정책을 실험하기에 적당했기 때문임.


15. 미국 CIA에서 보안 전문가들이 파견되어 우루과이 군과 경찰에게 방첩 기술을 가르침. 그 중에는 도청, 암살, 고문 방법도 있었음


16. 미국의 지원을 받은 콜로라도스 출신 대통령 호세 파체코는 1973년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사독재에 들어감. 그리고 투파마로스와 공산주의자들을 철저히 탄압함. 다만 우루과이는 국내에 대학교가 6개 밖에 없는데다가 사회적으로도 폐쇄된 편이다 보니 공산주의자들이 오래 활동하지 못하고 아르헨티나로 도망쳤음. (그리고 그들은 공산주의자들을 가장 잔인하게 탄압한 아르헨티나에서 진짜 지옥을 보게 됨.) 우루과이 군사독재 시절, 우루과이에서 죽은 사람들은 180명이라고 함. 15년의 군사독재 기간 치고 매우 적은 숫자인데 이는 대부분이 아르헨티나로 도망갔다가 거기서 끔살을 당했기 떄문임.


17. 우루과이의 군사정권은 12년간 계속 됨. 하지만 워낙 우루과이가 강력한 정부를 싫어하는 나라이다 보니 우루과이의 보수층이 군사정권에 반대하게 됨. 지지층을 잃은 군부는 1985년 민정 이양을 했고 우루과이는 다시 정치적 평온을 되찾음.


18. 앞서 설명했다시피 우루과이의 주요 산업은 목축업과 농업이고 우루과이의 보수 세력은 지주들인데 이들은 정부가 경제 정책에 개입하는 것을 싫어했음. 지금까지도 정부 도움 없이 잘해왔는데 왜 미국뽕 맞은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 정부가 난리친다고 토지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소와 양들이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왜 환율 갖고 장난치느냐는 비판적인 시각이 우세했음. 그래서 미국의 기대와 달리 우루과이에서 친미정권은 그다지 인기가 없었음.



19. 친미 군사정권이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으면서 '경제난은 시간 지나면 해결되는 것이고 정부는 작을수록 좋다'는 우루과이의 정치 문화는 뿌리 내리게 됨. 그래도 외교권만은 대통령이 갖는 것으로 헌법이 바뀜. 그리고 우루과이는 한국처럼 대통령 5년 임기에 단임제이다.



20. 군사정권 이후, 중앙정부의 권력을 축소시키기 위해 우루과이는 대통령제에 추가하여 비례대표제를 도입함. 한국과 차이점은 우루과이는 지방 자치의 역사가 깊고 뿌리가 잘 내린 나라라는 점. 그리고 원래 정치의 비중이 낮은 편이라 비례대표를 하든 말든 국민들은 그렇게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정치에 대한 관심이 적다는 것은 일본과 유사하다.



21. 일본처럼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낮은 관심도는 우루과이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다. 2010년 (한국에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라며 존나게 빨아대던) 호세 무이카가 대통령이 되었는데 이 사람은 무장게릴라 투파마로스 출신이다. 그런데도 우루과이에서는 관심이 없었다. 무이카는 우루과이에서 동성결혼을 합법화 한 대통령으로 유명한데 유권자들은 그다지 반발하지도 않았다. 



22. 라틴아메리카이다 보니 카톨릭 국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카톨릭의 영향력도 매우 낮은 편이다. 여러모로 일본과 비슷하다. 정치 가문 출신 2세 정치인이 정계에서 활동하는 것도 일본과 비슷하다. 예를 들어 현재 대통령인 루이스 라카예 포우(2020~)는 루이스 알베르토 라카예(1990-1995)의 아들이다. 



아들 지원 유세를 하는 루이스 알베르토 라카예.









세줄요약
1. 우루과이는 목축업 강국이며 정치적으로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여 안정되어 있지만 빈부격차가 심하고 정치권도 이를 고치려고 하지 않음
2.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 외국의 영향을 덜 받는 편이라서 백인과 원주민의 대립도 심하지 않고 우파와 좌파도 큰 차이가 없음.
3. 한때 공산주의 게릴라나 군사정권이 들어서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정치에 대한 관심도가 매우 낮은 나라이며 이는 일본과 비슷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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